()[최헌규의 중국이야기] 3장.회오리 치는 부동산 광풍
2011-01-09 16:13
3장-1 결혼을 위한 패스포트 아파트 문서
“예비 사윗감을 만날때 엄마가 제일먼저 묻는 게 있어. 아파트 있냐는 거야. 없다고 하면 거기서 끝장이야. 무조건 있다고 해야 돼. 알았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팡누(房奴)’라는 중국 TV드라마에서 여자친구 딩쟈신(丁佳馨)은 남자친구를 데려와 자기 어머니한테 인사시키기에 앞서 이렇게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남자친구는 “알았다”고 대답했으나 막상 여자친구의 어머니앞에서는 거짓말을 못한다. 여자친구 어머니는 바로 퇴짜를 놓는다. 어깨가 축 쳐져서 방을 나오는 모습에 일이 글렀음을 예감한 여자친구가 다급하게 묻는다.
“뭐라고 대답했어”
“도저히 거짓말이 안나와서 사실대로 말씀 드렸어.”
“배 터져 죽은거 아냐?”
“아유, 이런 바보, 자기처럼 아둔해서 죽었어, 아둔해서…”
TV 드라마는 사회상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팡누는 ‘집의 노예’라는 뜻으로 서민들이 평생 집한칸 마련에 바둥대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요즘엔 천정부지의 식품물가에 치여사는 서민이라는 뜻으로 '차이누(菜奴)'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땅이 넓은 중국이지만 중국인들 역시 내집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다. 정부가 올해도 5월과 9월 잇달아 강도높은 집값 억제책을 내놨으나 별 약효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요도시의 지난 10월 집값은 작년에 비해 8.6%나 올랐다. 직장인의 경우 27년이나 꼬박 저축해야 두어칸되는 아파트 한 채 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하늘처럼 치솟는 집값은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을 여아선호로 바꿔놓고 있다. 중국에서도 혼인때 때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요즘 부부들은 아들을 낳아봤자 혼인때 공연히 비싼 집이나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여아를 선호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부부들은 남아를 임신하면 낙태수술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팡누말고도 집을 주제로한 TV드라마는 쐉몐쟈오(양면테이프), 팡즈(房子ㆍ집)’ 워쥐(蝸居ㆍ달팽이 집, 누추하고 작은 집)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워쥐는 관료부패를 문제삼고, 사회상을 시니컬하게 다뤘다는 이유로 방영 중단 사태까지 맞았다.
워쥐의 주인공인 궈하이핑 부부는 상하이 푸단(復旦)대를 졸업했지만 내집마련에 있어서는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내집 장만을 위해 단칸방에서 아둥바둥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 부부의 삶은 그 자체가 곧 투쟁이나 마찬가지다.
궈 부부는 그나마 명문대학을 나와 직장을 잘 잡은 경우여서 고생 끝에 작은집 하나를 마련한다. 하지만 대출금과 고물가에 치여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다. 행복의 여신은 여전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곳에서 얄궂은 미소만 보내고 있다.
극중에서 궈하이핑은 “쳇! 인민을 위한 봉사는 무슨, 부자들을 위한 배려 밖에 없구만”이라고 쏘아붙인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슬로건이 무색해진 현실을 꼬집는 말이다.
워쥐는 관료들과 부동산 개발업자들간의 정경유착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도시 샐러리맨의 고달픈 삶도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공감을 줘 시청자들을 TV 앞에 끌어다 앉혔다.
중국에서도 집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다. 집은 행복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집때문에 울고 웃고, 집에다 모든 희망을 걸고 집 때문에 상처받거나 좌절하기도 한다. 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80%가 “내 집마련은 행복과 직접 관계가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집을 갖기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마치 30년후 어느 한순간 행복을 얻기 위해 30년동안 고난의 행군을 해야하는 것과 같다. 드라마 워쥐에 나오는 ‘쳇, 인민을 위한 봉사는 무슨...’이라는 대사는 차라리 집을 배급받던 사회주의 시절이 행복했다는 현실 불만의 한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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