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내부 금융거래 삼성 뺨치네

2010-03-24 09:17

한화가 내부 금융거래 규모로 상위 대기업을 줄줄이 제치고 삼성마저 앞지를 기세여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증권가는 금융지주 설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동시에 기회유용을 우려하기도 했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화증권은 2009 회계연도 1~3분기(4~12월)에 대한생명ㆍ한화석유화학ㆍ한화건설을 포함한 19개 계열사와 금융상품ㆍ유가증권을 14조8065억원 규모로 거래했다. 전년 1~3분기 누적액 1조7967억원과 비교하면 1년만에 무려 8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분기별로는 1분기가 4조2201억원, 2분기 5조4646억원, 3분기는 5조1217억원에 달했다.

한화증권과 계열사가 1분기에 거래한 규모는 재계 서열 1위인 삼성보다도 많은 것이다. 삼성증권은 2ㆍ3분기부터 앞섰지만 1분기에는 한화증권 절반인 2조1124억원에 그쳤다. 게다가 재계 5위권인 현대자동차ㆍSKㆍ현대중공업에 속한 HMC투자증권(7조1427억원)ㆍSK증권(5조9645억원)ㆍ하이투자증권(3조2534억원)도 1~3분기에 한화증권보다 최대 4배나 적었다.

한화가 재계 10위권인 점을 감안하면 한화증권에 몰아준 자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란 게 증권가 평가다. 전업 증권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대기업 계열 증권사 가운데 내부거래 규모로 하위에만 머물던 한화증권이 단숨에 선두인 삼성증권마저 뺨칠 기세"라며 "내수시장 격인 모기업 지원을 못 받는 증권사 입장에선 포기해야 할 시장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처럼 팔을 안으로만 굽히면 비대기업 계열 증권사가 설 땅을 점점 잃을 수밖에 없고 회사나 투자자 이익에 반하는 기회유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화증권과 거래하던 계열사가 10곳 미만에서 갑자기 두 배로 불어났다"며 "기업 생리상 오너가 전략적 방향을 제시했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각사 이익보다 모기업 방침을 쫓다 보면 기회유용도 일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화 내부에선 대기업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상 공시 의무를 피했다는 언급도 나왔다. 한화 계열사 자금 담당자는 "1회에 100억원 이상 거래하면 이사회 결의를 거쳐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며 "대외적으로 물량 몰아주기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100억원 미만으로 거래 규모를 맞춰 왔다"고 말했다.

한화가 내부거래를 늘린 것은 김승연 회장이 신년사에서 금융 부문을 기업 구심점으로 삼겠다고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앞서 이용호 한화증권 사장도 한화가 금융지주와 일반지주로 나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기업이 만족할 만한 상품을 내놓은 덕분에 내부 법인고객도 급증했다"며 "법인영업 강화를 위해 전문인력을 대거 배치한 것도 한몫했다"고 전했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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