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선진화의 선결과제는 의식개혁이다

2010-03-10 11:23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우리는 지금 1인당 소득 2만 달러 수준에 있다. 선진국들은 4만 달러를 넘고 있으니 우리도 소득을 그만큼 올려놓으면 선진국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화란 삶의 질 선진화를 의미한다. 소득이 늘어도 예컨대 집값이 비싸고 자녀교육이 어렵고 사회질서가 바로 서지 않으면 삶의 질은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그런 쪽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후진국 단계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쌀이나 옷 자동차와 같은 사유재(私有財)다. 사유재란 개개인이 생산이나 구매를 할 수 있어서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이들 물질생산만 늘면 그 만큼 삶의 질이 향상되게 마련인데 우리의 지난 과거가 그러했던 것이다.

사회저축과 사회재산의 부족이 선진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을 향해 가는 지금의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유재가 아니라 환경·교육·의료·문화·사회질서·주거환경·국토관리 등 공공재(公共財)다. 이들 공공재는 사회가 생산이나 소비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선진화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사유재의 부족이 아니라 공공재의 부족이다. 공공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땅값, 집값이 비싸고 물가가 높으며 질 높은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공공재는 왜 부족하게 되는가. 국민들의 공동체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공공재는 사회재산이며 이것은 세금·사회보험료·기부금·사회봉사 그리고 유산·사회환원 등 이른바 사회저축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사회재산은 내 재산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그래서 질서의식이 부족하고 사회저축을 기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국민저축의 약 7할이 사회저축이고 나머지 3할이 개인 저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반대가 되어 있다. 선진국들은 개인재산은 적지만 사회재산이 많아 잘 살고 우리는 개인 재산은 많지만 사회재산이 적어 못사는 것이다.

전체사회 이익의 틀 안에서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통체적 개인주의로 국민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바로 잡으려면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돈이 있다고 해서 나 혼자만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없고 교통체증에서 나 혼자만 벗어날 수 없다는 평범한 이치이다.

우리의 가치관도 이기주의와 연고주의,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전체사회이익의 틀 안에서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적 개인주의로 격상시켜야 한다. 이에 맞추어 우리의 재산관도 고쳐야 한다. 사회재산도 내 재산과 똑같이 생각해야 하며 유산은 자녀들에게만 상속하지 말고 부유층일수록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재산당대제도를 지향해 가야 한다.

우리들의 생활관도 바꾸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대표적인 공공재인 교육이나 수돗물도 사유재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유산을 대학에 바치거나 교육세를 내는 데는 인색하면서 내 자식만 잘 가르치려고 사교육비는 엄청나게 지출하는 것이다. 수원지의 물을 깨끗하게 지키려는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그 대신 개개인이 정수기를 달아 맑은 물을 마시려 하고 있다. 아직도 차를 운전하면서 창 밖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많고 대중목욕탕에 가보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다. 국민의식이 선진화하고 질서의식과 시민정신이 성숙해야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 이 칼럼은 한국선진화포럼에서 제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