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잉 민주주의(?)
2009-01-28 14:03
유장희 (이화여대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회원)
요즘 필자는 동남아인사들과 교류가 잦다. 동아시아 경제학회 회장으로서 또 한국을 대표하는 현인그룹(EPG)의 한 사람으로서 동남아국가들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며 또 동남아지역 주요 인사들과의 회의, 면담, 전화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세계금융위기 때문에 이들 국가도 경제가 무척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국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기는 해도 이들 대부분이 수출주도형 성장국들 이므로 선진권 경제의 부진현상이 이들에게 주고 있는 타격은 적지 않다.
먼저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의 세계금융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략 네 가지다.
첫째, 우리정부의 재정능력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일본에 비해서 우리정부의 재정적자는 훨씬 적다는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경우 GDP대비 국가채무규모가 77%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3%에 불과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재정확대정책이 한국의 경우 큰 무리 없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약 2천 5백억 달러로서 퍽 안정적 수준이고 게다가 미∙일∙중 3국과 통화맞교환협정을 맺어 외환의 여유는 충분하고도 남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환율불안 현상을 겪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의 환율만큼 안정적인 국가가 없을 것이라고도 전망하고 있다.
셋째로 우리나라의 수출주종 제조업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철강, 조선, 가전제품, 반도체, 자동차 등 국제적 수요에 진폭이 비교적 적은 품목의 생산능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한국인 특유의 위기극복능력, 도전에 대한 응전능력, 인내와 끈기 그리고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민간의 역동성을 들고 있다. 동남아 국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특수성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에 대한 부러움과 칭찬은 여기서 끝난다. 거의 매일 세계뉴스시간에 TV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한국 정치, 한국 사회의 갈등 현상은 가히 위기의 수준을 넘어 파국의 모습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걱정하고 있다.
아무리 경제적 회복능력이 탁월하다 해도 정치∙사회가 불안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 과정을 넘어 민주화를 달성했다고 하나 민주화가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는 것이다.
과거 50여 년의 세계역사에서 이들은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
남미국가들의 경우 스페인∙포르투갈에서 독립하여 50~60년대 활발한 경제성장을 보였으나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분열과 폭력의 연속현상으로 인하여 경제자체도 크게 후퇴한 것을 본 것이다. 법치주의에 앞선 ‘포퓰리즘’의 횡포는 마침내 국기(國基)를 흔들어 혁명과 내란을 반복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현실은 선거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에 의한 국가 운영이 아닌 극렬 단체들의 극한투쟁을 통한 폭력우선주의 또는 벼랑 끝 민주주의가 난무하는 국가로 보이는 것이다.
역사가 거꾸로 가는 법은 없다. 그러나 거꾸로 돌리려는 세력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놀랍게도 과거 10년의 평등주의 정책에 향수를 느끼는 세력들이 점점 역사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외국인들의 눈에도 이것이 보이는 모양이다.